[키워드로 본 촛불시위 3개월] ‘대중의 지혜’ 인가…‘익명성의 배출구’ 인가…

④ 집단지성의 파워와 한계

87년 민주화 넥타이부대 참여 등 집단적 힘으로 권위주의 저항”

‘국민 메시지 전달’긍정속 군중심리.폭력 등 사회병리 드러내”

“다수의견에 매몰되기보다 합리적인 수렴.생산과정 고민할때”

‘대중의 지혜인가, 익명성의 배출구인가.’

한 인터넷 포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글이 게재되면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린 학생들이 튼 길에 대중이 동참했고 식자(識者)들이 합류했다.

한 점에서 출발해 선과 면을 이룬 촛불은 좀체 식거나 꺼질 줄 몰랐다. 3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주말 밤 광화문을 밝히는 건 여전히 촛불이다.

정보의 개방과 공유 그리고 다수의 참여라는 심지로 타오르고 있는 이 촛불은 우리 사회에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개방과 참여의 웹 2.0 시대에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org)를 비롯해 추천 사이트 위지아(wisia.com), 문답 사이트 위스푼(wispoon.com), 이슈토론 사이트 이슈플레이(issueplay.com)와 같은 공간들은 모두 혼자서 결정 내리기 힘든 문제를 다수의 지혜로 풀어가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또 경제활동에서 네트워크를 강조한 위키노믹스(Wikinomics)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인터넷 시대 이전이라고 해서 집단지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 68혁명은 다중의 집단적 힘으로 권위주의 문화에 저항했고, 87년 민주화운동 때도 넥타이부대의 참여가 민주화 쟁취의 큰 힘이 됐다. 프랑스 백과사전파나 진나라의 여불위 같은 이들은 다수 개인의 의견을 수집해 시대의 지식을 집대성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수유+너머’와 ‘다중지성의정원’과 같은 연구모임들이 생겨나 아카데미의 강단을 벗어난 대중지성을 표방하고 있다.

집단지성은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오래전부터 살아 숨쉬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다시 집단지성이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 촛불의 무엇이 우리에게 집단지성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일까.

처음 집회가 열렸을 때, 또 그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됐을 때, 국민들은 이 새로운 형태의 의사표현 방식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다수 대중의 건강함에 박수를 보냈고 대중의 지혜에 대한 묘한 기대감도 부풀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이정원(40) 씨는 “처음 촛불집회가 시작됐을 때 집회에서 나온 주장들이 국민의 마음을 대신해줬다고 생각한다” 면서 “특히 기존 미디어와 정치권에 대한 염증이 커지는 상황에서 다수 민의를 표출하는 새로운 방식의 집회가 참신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중견회사 부장 김수동(50) 씨도 “이 정부가 국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처음 집회가 열렸을 때 나 스스로 여기에 공감했다”고 했다.

그러나 집회가 장기화하면서 충돌이 생기고 폭력이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수다한 여론이 수렴, 정제되지 못하면서 온갖 억측과 아집이 혼란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집회가 점차 과격한 양상을 띠고 내부적으로 혼선이 생기면서부터) 대책위원회의 순수성이 일부 의심받기 시작했고, 집회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러자 집회에 대한 여론도 초기와는 달리 양분되기 시작했다.

30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노인환 씨는 “나도 처음에는 찬성하는 쪽이었지만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무작정 집회를 이어가는 것은 사회적 낭비다. 이미 국민의 의사는 전달됐고 이제는 정치권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지켜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정원 교사는 “다수의 의견 결집이라는 방식은 인터넷과 함께 시나브로 우리 일상의 표현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촛불집회를 통해 폭력과 일방적 매도, 공세적 태도 등 집단적 지성의 적지 않은 한계를 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촛불집회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메시지라는 긍정적인 요인과 함께 군중심리, 익명성, 분노, 증오 등의 사회병리적인 문제점도 많이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를 반성적으로 고찰하지 않고 통칭 ‘집단지성’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이어 “우리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의견’ 그 자체에 매몰되기보다 이를 보다 합리적으로 수렴하고 생산하는 과정에 좀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춘병 기자(yang@heraldm.com)

2008/08/05 16:32 2008/08/05 16:32
Posted by iwilab